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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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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사르데냐 왕국의 국왕으로, 비토리오 아메데오 3세와 스페인의 마리아 안토니아의 셋째 아들이다.
그가 형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로부터 양위를 받았을때 사르데냐 왕국은 1796년에 항구도시 니차와 왕실의 본거지인 사보이아를 혁명 프랑스에게 양도했고, 1802년에는 핵심 영토인 피에몬테까지 빼앗겨 사르데냐의 칼리아리로 천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제6차 대 프랑스 동맹에 참여하여 1814년 제1차 파리 조약에 따라, 사보이아, 피에몬테, 니차를 모두 되찾았다. 토리노로 되돌아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는 왕국의 이름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Regno di Sardegna-Piemonte)으로 개칭하였고, 1815년 빈 회의에서 옛 제노바 공화국의 영토였던 리구리아 지역까지 획득하였다.
하지만 왕권신수설을 신봉하여 민중들의 요구를 끝까지 듣지 않다가 1821년의 혁명으로 퇴위했다. 이후 사르데냐 왕국의 왕위는[1] 동생인 카를로 펠리체가 물려받았다.
2. 가족 관계[편집]
1789년 합스부르크에스테 가문의 마리아 테레사(Maria Teresa d'Austria-Este 1773~1832)와 결혼해서 1남 6녀를 두었다. 외아들인 카를로 에마누엘레가 요절해서 왕위는 동생 카를로 펠리체가 이었으나, 카를로 펠리체 역시 자녀를 두지 못하여 사보이아 왕가의 직계는 단절되고 이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위는 카리냐노 분가에서 계승하였다.
6명의 딸 가운데 성인으로 성장한 4명의 딸을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군주들과 결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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